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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반수의경에 나타난 호흡법과 선무도

작성자
sunmudoland
작성일
2014-02-12 11:01
조회
3966
안반수의경에 나타난 호흡법과 선무도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안반수의의 개요

Ⅲ. 안반수의와 선무도
1. 안반수의와 선무도의 상관관계
2. 선무도 수련체계와 안반수의 호흡법
3. 선무도 수련에 필요한 안반수의 호흡법

Ⅳ. 맺은 말



Ⅰ. 들어가는 말

선무도는「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隨意經)」에 근거한 불교의 전통수행법으로 본래는 불교금강영관이라고 해서 선가에 비밀리에 전수되어온 밀교 수행법이며 요가나 명상을 아우르는 관법수행의 핵심이라고 한다. 관법수행은 위빠사나 혹은 요가처럼 인도에서 시작되어 한국에서 전승된 불교 전통수행 철학이다. 지금까지 선무도를 실천적수행법으로 삼으면서 늘 힘들어하고 궁금해 오던 호흡법을 부처님의 위대한 경전인 <안반수의경>을 통해서 몸과 마음과 호흡의 조화를 통해 삼매를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고 선무도에 나타난 안반수의경의 호흡법과 선무도의 상관관계를 살펴 보고자한다.

Ⅱ. 안반수의의 개요

부처님께서 월지국의 사기유국에 머무셨을 때 90일 동안 앉아서 안반수의를 행하셨는데
안安은 범어의 ‘아나’, 반般은 ‘아파나’라는 말을 발음 그대로 옮긴 것으로서, 안반의 원어는 ‘아나파나’이다. ‘아나’는 들숨(入息), ‘아파나’는 날숨(出息)이다. 그러므로 안반은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말한다. 수의(守意)는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한다는 범어 ‘사티’를 옮긴 말이다. 특히 남방불교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위빠사나’ 수행법을 비롯해서 중국의 불타 라 칭송되는 천태종의 시조인 ‘지의대사’가 저술한 <마하지관, 천태소지관> 등의 가르침은 곧 ‘아나파나사티’가 그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 중 ‘오정심관’(五停心觀)의 하나로서 일반적으로는 수식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수행법의 의미는 몸과, 마음과, 호흡의 조화를 통해서 삼매를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집중하여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다시 90일을 홀로 앉아서 온 세상의 모든 인간들과 날고 꿈틀대는 새와 동물들까지도 모두 구제하고자 하였다. 요컨대 부처님은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는 안반수의를 닦고서 이를 전하여 모든 인간들과 동물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고행을 하면서 단식, 숨을 참는 호흡 훈련 등 몸을 괴롭히는 온갖 수행을 참고 견뎌냈지만 그 고행이 특수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가치가 있으나, 보편성을 지닌 올바른 수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먼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호흡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삶 속에서 호흡으로 인간적인 고뇌를 해결하는 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동식물들도 호흡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이렇듯 가장 자연스럽고 합리적으로 호흡하는 것은 육체나 정신을 위해서 더없이 중요한일이다. 그렇다고 붓다의 호흡법이 생리현상으로서의 들숨, 날숨을 그대로 자연에 맡겨 두고 방치하는 것은 아니며 호흡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을 통해서 안정과 나아가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수행법이다. 그러므로 원어로는 ‘아나파나사티’라고 하며, 한문 번역은 ‘안반수의’라고 통칭했던 것이다.

안반수의법에는 여섯 단계의 진전이 있다고 한다. 첫째가 수식(數息)의 단계로서, 들숨과 날숨의 수를 헤아림으로써 산만한 마음을 한 곳에 모은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호흡을 따라 의식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로서 상수(相隨)라고 한다. 셋째는 止의 단계로서, 점차 수에 대한 관념을 떠나 의식과 호흡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때는 생각이 호흡을 의식하지 않고 고요히 안정된 상태이다.

넷째는 관觀, 으로서 사물을 관하는 의식의 집중이 내면을 향하는 상태로서 정려(靜慮)의 단계이다. 다섯째 다시 고요한 자기 주체로 돌아오는 환還,의 단계는 내적인 정려가 깊어짐으로써 고요한 자기의 주체를 향해 돌아오는 경계를 말한다. 여섯째 정靜의 상태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경계로서 靜의 상태다.
또한, 수식에 단계에서는 네 가지 마음의 힘을 얻고, 상수의 단계에서는 또 다른 네 가지 마음의 힘으로서 악을 없애며, 지의 단계에서는 네 가지 신통력, 즉 초능력을 얻고, 관의 단계에서는 다섯 가지 정신력을 얻으며, 환의 단계에서는 일곱 가지 깨달음을 얻고, 정의 단계에서는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을 얻게 된다고 하여 호흡 수련의 공덕이 있다고 안반수의에서는 말한다.

Ⅲ. 안반수의와 선무도

1. 안반수의와 선무도의 상관관계
현대인들의 정신적 고뇌와 신체적 질병을 가져 올 수 있는 갖가지 스트레스와 육체의 불균형을 스스로의 수련을 통하여 건강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데 큰 의미를 두는 선무도는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잘 살피고 정화하여 조화롭게 이끌어나감으로서 도를 이룬다고 하였다. 또한 선무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상대성을 초월한 경지, 그 자리가 곧 무아이며 걸림없는 상태, 삼밀(몸, 마음, 호흡)의 조화를 통해 진정 상대와 하나 되는 무애의 경지를 나타내며 수행의 정신적 이상을 몸으로 표현하는 차원높은 무도이자 동작으로 표현되는 행동 만다라라고 한다. 그러면 선무도 수련에 있어서 안반수의경에 나타난 호흡법을 살펴보자.

“마땅히 안나반나(안반)의 염念(수의)을 닦으라. 비구가 안나반나의 염을 많이 닦으면 몸과 마음이 평안해진다. 그리하여 깨달음에 있어서나 보고 느낌에 있어서 고요하고 순일한 가운데 분명한 생각이 일어나 닦고 익힘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호흡이 고르면 몸과 마음이 안정된다. 호흡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는 호흡과 생각을 같이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여 의식적으로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의식을 통해서 잘못된 호흡을 올바르게 바꾸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대개 따로 떨어져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호흡하는 동안 마음이 제멋대로 달려 나가기도 하고, 다른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호흡이 올바르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예컨대 마음이 어떤 일에 집착하여 골몰해 있을 때에는 들숨이 주가 된다. 따라서 나가는 숨이 줄어들게 되어 체내의 나쁜 독소가 그만큼 덜 배출된다. 탐욕에 끌려 있다든지, 마음속에 진노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든지, 슬픔이나 후회, 의심, 자포자기 등에 빠져 있으면 호흡도 고르지 않게 된다. 나가는 숨을 의식적으로 길게 내뿜는 것을 되풀이하는 동안에 호흡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이에 따라 마음도 순일한 적멸寂滅 상태로 가게 된다.

이처럼 의식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중에 올바른 호흡이 이루어지면 마음은 절대 안정의 상태에 머물게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안반수의경에 나타난 호흡법은 선무도 수련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호흡법이자 의식을 집중 할 때에도 꼭 필요한 호흡법이다.

2. 선무도 수련체계와 안반수의 호흡법
선무도 수련법에는 선요가(유연공, 오체유법), 좌관법(영정좌관, 영동좌관), 입관법(영정입관, 영동입관), 행관법(영정행관, 영동행관)이 있다. 근육의 탄력을 키워주는 선요가 부터 정(情), 기(氣), 신(神)의 조화를 통해 삼매를 구하는 좌관법과 임독 양맥을 비롯한 기경팔맥을 원활하게 소통시키는 입관법, 호흡과 균형이 중요한 행관법등을 수련할 때 안반수의에서 열가지 지혜로 나타낸 호흡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안반수의, 즉 호흡의 들어오고 나감에 정신을 집중하는 데에는 열 가지 지혜가 있다. 첫째는 수를 세는 것으로 가장 손쉬운 것부터 시작한다. 둘째는 상수로서 호흡과 마음을 서로 따르게 한다. 수를 세면 마음이 그 수에 쏠려 호흡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수를 셈으로써 수와 호흡을 각각 존재하게 하긴 하나 마음이 수를 헤아리고 있기 때문에 멀리 달려 나가지 않는다. 이에 익숙해져 마음이 어떤 한 가지에 머물게 되면 그 다음에 호흡 자체에 마음을 쏠리게 할 수 있다, 여기가지 이루어지면 마음과 호흡이 서로 다르게 된다.

다음은 지로서, 마음을 그친다. 마음을 그친다는 것은 호흡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넷째는 관으로, 마음이 호흡에서 더나 외계의 사물을 대할 때 잡된 생각 없이 관조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 환이니 마음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돌아와서 밖으로 달려 나가거나 흩어지는 일 없이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정이니,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청정본심(淸淨本心)이다.

다음은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네 가지 진리다. 청정한 본심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일체가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괴로움의 원인과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며, 드디어 올바른 길도 알게 된다. 이처럼 열 가지가 모두 이루어지면 안반수의가 완성된다고 한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선무도 수련을 꾸준히 하다 보면 수련체계 속에 녹아있는 안반수의 호흡법을 적용하여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닌 여여(如如)한 상태에 머물 때 지혜로운 삶을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3. 선무도 수련에 필요한 안반수의 호흡법
“들숨은 짧게, 날숨은 길게 하라” 수를 세면서 호흡할 때 들어오는 숨을 짧고 나가는 숨을 길게 하라고 한다. 그러나 들어오는 숨이 긴 경우가 많으니, 이는 잘못된 것이다. 마음이 수식을 떠나서 다른 곳에 가 있거나 불안할 때, 또는 어떤 사물을 골똘히 생각하거나 숨을 세면서 열까지 이르지 못하고 도중에 수를 잃어버렸을 경우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숨을 세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숨만이 아니라 나가는 숨도 마찬가지이다. 나가는 숨이 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짧은 이유 역시 위에 든 여러 경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이 짧고 긴가를 확실히 깨닫고 들어오는 숨을 짧게, 나가는 숨을 길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만일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호흡은 평상시의 상태로 돌아간다. 평소에는 들숨이 길고 날숨이 짧기 때문에 습관에 의해서 들숨이 길게 들어온다. 그러나 들숨은 짧고 급해야 한다. 날숨이 길고 충분하면 그 반동에 의해서 들숨은 자연히 급하고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이때 마음이 절대 숨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마음이 다른 것을 생각할 때뿐만이 아니라 불안 하거나 다른 사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때에도 호흡의 리듬이 깨진다.
숨을 쉴 때는 하나에서 열까지 수를 세어야 한다. 그러나 도중에 수를 잃어버리면 짧게 이루어지던 숨이 흐트러져 다시 길어지게 된다. 그래서 호흡 방법이 공교롭지 않다는 것은 들숨이 짧고 날숨이 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나 호흡도 꾸준한 수련을 통해서 습관화할 때 그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보면 선무도 수련시, 입관立觀과 행관行觀을 시작할 때 준비와 끝낼 때 정리운동으로 심인법을 해서 마음과 호흡을 안정시키는데도 이러한 호흡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영정행관의 수련법은 밀교철학을 체형으로 구체화한 이른바 행동만다라라고 할 수 있는데 정적인 수련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행법이며 물질적 원소인 사대(지, 수, 화, 풍)의 구성요소 중에서 흙에 속하는 개념으로 (行. 主. 坐. 臥. 語. 默. 動. 精. 反. 空)등의 10개 동작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호흡법은 동작마다 각각 다르며 특히 지식을 하는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도 할 수 있다. 들이마시고 멈추고 내쉬는 3단계의 호흡이 언제나 동작과 일치해서 흐트러지지 말아야 하며 처음 준비 자세에서의 고요함이 동작이 다 끝났을 때도 숨결이 흐트러지지 말아야한다. 관법을 통해 내면세계에 잠재한 7대(地. 水. 火. 風. 空. 識. 見)만다라의 모습과 색감, 그리고 향을 음미해야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숨을 쉬고 있다. 생활습관이나 환경 그리고 성격에 따라서 호흡의 형태도 각각 다른 것 같다. 즉 현재의 심리상태나 자세에 따라 호흡의 깊이나 형식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보통 사람들이 무의적으로 호흡하는 것을 흉식 호흡이라고 한다. 이러한 가슴으로 하는 짧은 호흡은 건강에 이롭지 못하다. 명상이나 요가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호흡을 고르게 조절하는데 이것을 조식법이라고 한다. 조식이란 호흡을 고르게 조화시키는 것으로 좌선에서 바른 호흡을 갖춤으로서 심신이 안정되고 빠른 삼매지경을 얻을 수 있다 . 선무도 수행이나 기타 모든 수행에 있어서 이 調息法은 근본이 되며 깨달음의 직접적인 방편이 되는 것이다.

Ⅳ. 맺은말

모든 법에 끌리지 않고 법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이 호흡법이라고 한다. 이 법의 그침을 관하는 호흡이 안반수의이다. 호흡을 하되 호흡과 하나가 되면 마음과 숨이 하나가 되어 들어오고 나가는 숨이면서 나가고 들어옴이 없고, 마음과 숨이 없는 상태에 이른다.
이러한 경지가 곧 청정한 호흡이라고 안반수의경에서 말한다. 불교 명상법의 요결은 이런 호흡의 의의를 깨닫는데 있는 것이다. 선무도 수련도 명상이고 결국엔 정적인 수련으로 가야 할 것이다. 선무도 수련을 하면서 외적으로 보여주는 동작에만 집중하다보니 그 속에 감춰진 위대한 보물인 호흡법에 대해서는 잘 헤아리지를 못했던 것 같다.
간혹 놓치는 호흡으로 숨이 차는 경우도 많았고, 또한 호흡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호흡이 산소의 흡수나 이산화탄소의 배출이라는 과학적인 의미보다는 생명현상의 근원을 지배하는 신비한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우리의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삶이 있으므로 숨이 들어오고 나감은 바로 삶과 죽음 그 자체라는 엄숙한 사실을 직시하며 지금 이 순간 살아서 숨 쉬는 현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