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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지 않는 삶

작성자
sunmudoland
작성일
2017-06-06 18:22
조회
1204
2008년 6월말로 기억한다. 당시 창원에서 살고 있는 내가 경주 골굴사에 있는 템플스테이 하면서 선무도를 처음 접하게 된 인연에 힘입어 승단심사를 앞두고 있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까닭이다.

당시 나는 갈기갈기 찢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 산사에 들어왔던 터인데 그곳에서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어떤 처사님께서 여기 왜왔냐고 묻기에 나의 욕심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상했으니 그것을 내려놓고 나를 돌아보기 위한 심정으로 여기에 와 있다고 대답했더니 그분께서는 지금은 애들도 어리고 더 키워야 하니 더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훗날 내려놓을 수 있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그 분의 말씀을 통해 현실은 직시하되 나를 고단케 했던 세속의 삶을 더욱 더 간소하게 하라는 말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또한 군더더기 없는 선과 동작은 나로 하여금 궁극의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무예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이끌림에 창원 집으로 돌아와서 선무도 도장을 찾아보다가 지방에는 지원이 없어 꿩 대신 닭의 심정으로 단학에서 운영하는 단무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3~4년이 지나고 현실은 여전히 실적에 내쫓기는 상황과 물질에 대한 집착과 스마트폰 SNS를 통해 떠돌아다니는 안목의 정욕으로 자극적인 것을 은근히 즐기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새 직장에서 또다시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그때, 2008년 골굴사 템플스테이에서의 아련한 기억이 떠올라 2015년 1월 9일 강남 도장에 내방하여 선무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선무도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수련시간마다 거친 숨을 내쉬기 일쑤였고 법사님께서도 살아 온 세월의 풍상에 호흡이 거칠다고 하셨다. 어쩌면 나의 고집대로 세상과 온 몸으로 맞서 살아온 결과로 망가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명과도 같은 소리일 것이다. 재물의 집착으로 골머리를 쓰다 보니 늘 나의 머리는 뜨겁고 눈이 피곤하다. 꾸준한 수련으로 단전에 정이 충만 되어야 그 에너지로 가슴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차가운 머리로 신명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몸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생각을 지배한다. 물과 거름과 잡초제거로 예쁘게 꽃밭을 가꾸듯 잘 정련된 칼과 같은 강인한 몸과 담박하지만 서릿발 맞으며 늦가을에 피어나는 국화같이 정결하고 온화한 마음을 가꿔 녹슬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어쩌면 골굴사와 선무도는 내게 있어 치열한 생의 한 가운데에서 맞이하는 쉼표와 같은 존재이자 공간이리라. 우리는 삶의 매 순간마다 선택의 과정 속에서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여기서 ‘나’라는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한 집안의 가장, 두 아이의 아빠, 아내의 남편, 대기업의 김부장, 예비 청소년 지도사 이런 것이 나의 정체성인 것인가? 이런 정체성이 주변의 관계와 환경에 지배를 받는 것이기에 우리는참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들숨 날숨의 호흡을 통해 순간의 알아차림을 하라는 채법사님의 일갈에서처럼 내면의 마음상태를 제3자로서 나를 관조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수련의 궁극의 목적이 될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종교인은 많지만 신앙인은 많지 않다. 기독교인 이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는 많지 않다. 반면 불교는 기독교와 다른 것은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 성불에 이르는 것이리라. 기독교의 교리는 고조선의 팔조금법에도 있었던 것처럼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태석 신부님같은 분들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은 체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보여 주신 분도 계시나 나를 포함하여 하느님도 공경하지 않고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메마른 교인들이 많은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질의 탐욕과 식탐과 육체의 정욕으로 우리의 머리와 오장육부와 하반신이 병들어 가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 하느님 공경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롭게'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광천수처럼 맑게 하여야 온전한 사랑이 차고 넘쳐 이웃에게 향기로운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를 맑고 바르게 세우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선무도 수련을 쉬지 않고 정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푸르름이 가득한4월의 마지막 날에 골굴사에서의 승단심사를 통해 더욱 정진하는 계기가 되며 하반기 승급시연회 즈음에는 노랗게 물든 가을처럼 성숙하는 내 영혼을 마주하길 기대하며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