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99-5554 

불교금강영관 선무도의 보급화

작성자
sunmudoland
작성일
2017-06-06 18:08
조회
1516
선무도 수련을 한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3단 승단 심사를 앞 둔 이 시점에서 지난 선무도 수련시간을 되돌아보면서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도 갖고자 한다.

나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다른 사람들 보다, 마음을 관찰 하고, 말로 표현하는 훈련을 하기도 했고, 마음과 의식의 관계를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특히 의식에서 사고와 감정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는 훈련을 하면서 알아차림의 중요성과 관찰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다. 평소에도 '불교의 선"에도 관심이 많아서 가끔 사찰에서의 수련회나, 떠오르는 마음을 관찰하는 선모임에도 참석했다. 명상, 참선, 수식관, 위파사나 등 불교 교리도 공부 하면서 마음에 관심의 폭을 넓혀 가고 있었다. 불교 수행 중에도 화두선, 염불선, 절수행 등에도 관심이 많아 깨달음의 궁금증과 해탈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 틈만 나면 바른 자세로 앉아 마음을 관찰 하였다. 호흡에 집중하면서 앉아 있으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너무 많아 호흡의 집중을 자주 놓치곤 했다. 계속 하다보면 무수히 떠오르던 생각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열심히 했지만 약간 줄어드는 정도이지 집중이 어려웠다. 이렇게 혼자서 마음공부를 해 오던 중 선무도를 접하게 되었다.

선무도와의 첫 만남
선무도 수련의 시작은 ‘유연공’에서 부터였다. 유연공은 발가락 운동으로 시작된다. 발가락 운동이라니, 발목도 아니고 발가락 운동을 하다니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단순한 동작이고, 쉽게 생각했지만 내 생각대로 발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내 몸에 붙어 있는 내 발가락인데 데,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발가락을 움직이려고 얼굴에 인상까지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웃기기도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선무도 수련에서 가장 이상하게 느낀 것은 “각자 호흡에 맞춰서 시작 하세요” 라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동작을 배울 때는 “구령에 맞추어서 따라하세요”였다. 그와는 달리 선무도는 모든 사람의 동작에는 속도가 다 다르므로 각자 따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항상 통일된 것이 편안하게 생각되었던지라 서로 다른 속도의 동작들은 산만하게만 보였다.
사람마다 호흡의 길이가 다를 것이고 수련의 정도에 따라 호흡의 길이나 깊이가 다를 것이다. 호흡에 맞추어 동작을 하라고 했으니 사람마다 그 동작의 속도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또한, 숨을 들이쉬면서 움직이고 내쉬면서 행동 하는 것이 단순해 보이는데 쉽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별다른 의식 없이 호흡하고 행동한 것이다. 그것을 동시에 맞추어 해 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선무도는 몸과 마음과 호흡의 조화를 이루는 수련이다. 호흡에 맞춰서 동작을 하는 연습을 한다. 호흡이 길면 동작이 느려지고 호흡이 짧으면 동작이 빨라진다. 따라서 동작의 속도를 보면 그 사람의 호흡의 길이와 깊이를 알 수 있다. 첫 만남에서 “이게 무슨 수행이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시간 수련을 마친 후의 기분은 좋았다. 몸은 약간 힘이 들었지만 마음은 가볍고 맑았다.

선무도와 인연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수련이 회를 거듭 할수록 “내 몸이 정말 굳어있네” “다리에 힘이 없구나” “호흡이 짧구나” “균형감각도 부족하네” 등 등의 생각으로 수련시간 내내 마음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동작을 배울 때는 배우는데 집중하느라 잊고 있다가도 잠시 틈만 있으면 내 몸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의식으로 떠올랐다. 집중하는 시간과 잡념이 떠오르는 시간이 서로 시소를 타듯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다시 일어났다 사라지고 하였다. 그래도 수련이 끝나면 마음이 상쾌했다.
아침 수련을 마치고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 법사님의 수련담은 그 상쾌한 마음의 여운을 더 길고 편안하게 해 주었다. 차 한 잔의 여유는 선무도 수련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이런 매력으로 선무도 수련은 점점 내 삶 속으로 들어오고 생활 속의 한 부분을 자리 잡았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 보니, 선무도 수련 후의 맑은 정신은 ‘집중의 힘’이었다고 생각된다. 혼자서 명상을 하고 난 후에 느끼는 것과 비슷하지만 더 강렬하였다. 아마 호흡과 동작을 맞추어 하다 보니 그 행동에 집중을 하면서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호흡과 동작에 서로 일치하게 움직이려는 의식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집중하게 된 것이 상쾌함의 원인이라 생각된다. 수련이 깊어질수록 집중력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동작과 호흡의 일치를 이룰 수 있었다. 그 도중에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끼어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련이 한 달, 두 달 지남에 따라 수련 내용이 많아지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아지면서 집중의 힘도 증가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도 커졌다. 몸이 달라지는 것을 앎으로서 수련의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수련을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항상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내가 저 동작을 할 수 있을까?" "오래 수련하면 나도 다른 유단자들처럼 멋있게 잘 할 수 있을까?" "나처럼 몸이 허약한사람이 혹은 뻣뻣한 사람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수련의 맥을 끊어놓기 일쑤였다. 다른 사람의 동작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니, 내 동작과 호흡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부정적인 생각만이 자꾸 들어오는 것이었다. 의식이 다른 사람에게로 갈 때마다 내 몸과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주 힘들었다. 그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의욕도 없어지고 수련의 집중력을 사라지게 하는 시기가 있었다.

1단 심사를 앞두고
1년이란 세월이 지나 지금까지 수련한 것을 점검도 받고 승단도 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승단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던지라 "그냥 수련만 열심히 하는 게 더 중요하지" 하는 생각이 더 강했다. 주위 사람들의 권고도 있고 해서 1단 승단 심사를 받기로 하고 연습을 하는데 걱정이 많이 되었다. 내가 하는 동작이 너무 어설프고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가 엉성하고 몸은 흔들흔들, 심사를 보겠다고 한 것이 후회되었다. 1승형을 하면서도 호흡과 동작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난 안되고 못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끼어들어서 힘들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호홉, 동작, 순서, 부끄러움, 힘듬, 잘하고자 하는 욕심, 등이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연습을 방해 했다. 심사 날에는 손이 떨리는데 “내 손이 왜 이렇게 떨리지? 정말 잘하고 싶은 욕심이 강한가보다. 침착하게 편안하게 하자.” 다짐하면서 동작을 하나하나 해나갔다.
마음을 살피고, 호홉을 관찰하고, 몸의 상태를 보면서 동작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 수행이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것은 한참 뒤였다.
심사과정을 통해서 한 단계 성장, 도약을 했다고나 할까? 정말 많이 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단심사가 이런 효과가 있구나 생각하면서 계기가 중요하며 피하지 말고 부딪쳐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무도 수련의 중단
선무도를 시작한지 2년 정도 지나면서 직장 이동으로 선무도를 더 이상 배울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지금까지 배운 동작들을 반복해서 수련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유연공 오체유법 등으로 몸을 풀고 장족앞차기 옆차기 장지르기 등 혼자 수련을 하였다. 그러나, 혼자서 수련을 하면서 집중이 더 안 되는 것을 알았다. 여럿이 같이 수련할 때보다 생각이 더 많아지고 정확한 자세를 하려 하기보다 횟수를 채우려고만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날이 갈수록 수련의 횟수가 줄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동적인 수련은 하지 않고 정적인 수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것도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 버렸다. 항상 마음속에서는 수련을 해야지 하면서 막상 하려면 “에이, 다음에 하지” 하면서 뒤로 미루기가 일쑤였다. 혼자서 꾸준히 수련 하는 것이 정말 힘들고, 나태해지기 쉽구나 생각하면서 수행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꼈다. 선무도 도장으로 수련을 하러가는 마음, 가서 도반들과 함께 수련하는 기쁨, 지도 법사님의 지도 이 모든 것이 필요했다.

선무도와 재회
선무도 수련을 못한지 2년이 다 되어 갈 즈음, 토요일에 수련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1주일에 한번이라도 수련을 하면 잊어버리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수련을 시작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 했다. 수련을 하다 보니 기억이 조금씩 살아났다. 혼자서는 꽉 막혔었는데, 여럿이 함께 수련을 하니 힘도 생기고 자세도 안정적이 되고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1주일에 한 번이니 잊지 않기 위해 집에서 연습을 했다. 권족 발차기, 회족, 점프 등 수련의 난이도가 훨씬 높아지고 훈련의 강도도 높아졌지만 마음은 상쾌했다. 기초 체력이 약해 조금씩 매일 횟수를 늘려가면서 강도를 높여야 겨우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할 수 있었지만, 점점 체력이 좋아지고 힘도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정말 기뻤다.
“안 되는 동작은 반복해서 연습해서 될 때까지 해 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안 되는 동작을 할 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세요. 선무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닙니다. 수행입니다” 법사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나에겐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선무도 동작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내 몸이 건강해졌다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내 건강을 체크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수련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신체적으로는 가볍고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즐거웠다.
"수행" 잊고 있었던 말이었다. 열심히 수행을 하면, 탐 진 치의 3독을 몰아내고 선정 삼매에 들어가 반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때부터 선무도를 단순한 운동이나 전통무술이 아닌 수행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2단 심사를 보면서
"수행"이란 말을 마음에 새기고, 승형을 할 때 더욱 집중하려 애썼다. 호흡이 거칠어지 면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호흡이 멈추는 시간을 조절하면서 승형을 하였다. 숨찬 느낌은 사라지고 훨씬 호흡이 안정 되었다. 점프를 하거나 회족 연속 발차기를 하면 숨이 가빠왔다. 이 때를 살펴보니, 숨을 참고서 동작을 하고 있었다. 호흡의 관찰이 어느 정도 되니 승형의 동작들이 안정되고 거칠어 씩씩거리던 호흡의 소리도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2단 심사를 보려고 마음먹고 수련할 때는 잘 해야겠다는 욕심도 많이 줄었다. 점점 다른 사람에게 의식이 빼앗기는 비율이 훨씬 줄어들고 나의 동작과 호흡에 집중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2단 승단심사를 크게 긴장함이 없이 보았다. 잘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의 집중도가 좋아졌다.

다시 찾아온 선무도와의 이별
다시 직장 이동으로 도장에서의 선무도 수련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혼자서도 수련을 잘 하리라 다짐하면서 떠났다. 한 번 경험이 있어서, 혼자서 수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알기 때문에 의지를 많이 내었다. 매일 아침에 넓은 공터에서 마음껏 수련을 했다. 3개월은 일주일에 5일은 한 것 같다. 이 시기에 수련을 제일 열심히 했다. 토요일에 한번 하다가 매일 반복적으로 수련을 하니 점점 형이 잡히는 듯 했다. 이젠 혼자서도 수련 할 수 있는 힘이 생긴 듯하다. 힘이 있을 때는 힘차게 하고, 몸이 힘들 때는 부드럽고 가볍게 하고, 시간이 있으면 좀 더 많이 하고, 바쁘면 짧게 하면서 융통성 있게 하니, 수련을 쉬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매일 똑같이 이만큼은 하리라 마음먹었다면 꾸준히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수련은 매일 하지만 그 강도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조절한 것이 잘 할 일인 것 같다. 나중에 법사님께서 동작을 많이 수정해주셨지만, 체력과 동작의 자연스러움은 많이 향상되었음을 나는 안다. 결국은 혼자서 수련할 힘은 생겼지만 정확한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가끔 교정을 받으면서 점검의 시간이 필요함을 알았다.

수행으로서의 선무도
3개월 만에 도장에서의 수련을 다시 시작 하였다. 이제 부터는 수련이 아니라 수행이다 생각 하면서 수련하였다. 법사님께서 "선무도는 도장에서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해야 합니다. 일을 할 때 호흡에 집중하면서 하면 됩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질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선무도에서의 행, 주, 좌, 와, 어, 묵, 동, 정 언제 어디서나 선무도 수행을 할 수 있다고 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게 있어서 선무도는 단순히 운동이 아니라 관법수행으로서 일상생활에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수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선무도는 자신의 표현입니다.
선무도와 함께 10년이란 세월이 지나 갔다. 계절이 바뀌듯 해가 바뀌듯 그냥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지금의 나를 보는 사람들은 "몸이 어떻게 그렇게 유연하세요?" "어쩌면 동작이 그렇게 멋있어요?" 라고 종종 묻는다.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세월이 지나다보니 그렇게 되었어요."가 내 대답이다. "여러분도 세월이 지나면 다 이렇게 됩니다. 쉬지 말고 꾸준히 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하고 말해주곤 한다.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지는 않다. 반복 하다보면 잘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지고, 못한다는 생각도 없어지고, 그냥 내 호흡에 맞춰서 할 뿐이다. 길을 가면서도 호흡에 맞추어 걸어가고, 전철을 타고 있을 때도 아랫배에 집중하면서 배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을 느낀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집중함으로서 욕심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일이 적어졌다. 편안하고 자연스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스스로 깨닫고, 지난 10년 선무도 수행의 위력을 알 수 있었다.

힘들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선무도 수련을 권함으로서 새로운 삶을 알아갈 수 있게끔 내가 아는 만큼, 내가 느낀 만큼 가르쳐 주고 싶다.

선무도의 발전을 위하여
신라시대 화랑들이 수련했고, 고려시대, 조선시대 승병들이 수련했던 우리 불교 전통무술을 대중포교의 이름으로 선무도라 했다. 선무도라는 이름으로 세상 속에 알려진지 30여년이 지났다. 신문 방송에 소개되면서 그 인지도가 높아지기도 하였고, 불교전통무술을 배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떠나곤 했다.

생활의 윤택과 더불어 정신세계로의 관심도 깊어지면서, 요가명상을 내세운 선무도는 그 흐름을 타고 발전하기도 하였다. 유구한 전통과 시대에 발맞춘 변신으로 대중들의 호응도 있었지만 깜짝 관심에만 그치고 말아 안타깝다. 30년이란 시간에도 불구하고 선무도는 커다란 변화 없이 세상 속에 스며들지 못하고 아직 탄탄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무엇이 선무도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걸까?
체육관이나 요가원 같은 실내 환경으로 선무도장을 만들어 운영함에 있어, 불교색채를 최대한 적게 나타내면서 요가나 명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모집하여 운영했다. 하지만, 시설 면이나 운영 면에서 타 스포츠 센터, 특히 요가원이나 국선도장과 같이 상업적 마케팅으로 접근하는 곳과 경쟁에서 살아남기란 어렵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불교정신으로, 무한경쟁시대에 선무도장이 살아남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 되었다. 지도 법사나 지원장이 바뀌고 지원이 없어지기도 하며,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선무도가 불교를 내세우지 않고 포교를 시도한 것이 오히려 선무도 발전을 더 힘들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 지역별로 선무도 선원이나 포교당을 만들어 사찰로서의 기능과 선무도 수행장으로서의 기능을 같이 겸할 수 있다면, 불자들이 신행활동과 함께 선무도 수행도 같이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찰 행사나 대중이 많이 모이는 날에 선무도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좌선이 아닌 행선의 또 다른 방법으로 선무도를 접하게 한다. 하지만 선무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동작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르다. 정신적 스승으로 멘토의 역할을 하는 수행자가 있어야 한다.
또한 각 사찰에서는 많은 불교 교양강좌가 열리고 있다. 불교교양강좌로 선무도 특강을 열고, 불자들에게도 선무도수행이 깨닮음의 길이라는 것을 홍보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불교에 관심이 있고 마음 수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 성과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법회에서 선무도 공연단이 시연함으로써 어린 불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건강한 신체발육을 위해 선무도가 좋은 역할을 하고, 집중력향상에도 훌륭한 역할을 한다는 홍보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래의 선무도 수련생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어린 친구들의 수련하는 모습은 또래 친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홍보의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불교와 선무도는 둘이 아니고 하나다. "배우고 싶어도 선무도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너무 멀어서, 아니면 내가 사는 도시에는 아예 없어서 배울 수도 없다."이런 말은 없었으면 한다. 도심 속의 모든 선원과 사찰에서 선무도 수행을 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